西の都「大宰府」 唐の都「長安」と日本の都「平城京」との関係マップ

‘서쪽의 수도’란

일본의 서쪽, 지쿠시 땅에 번영한 ‘서쪽의 수도’.
하쿠스키노에 전투 후에 지어진 미즈키와 오노성, 기이성 유적 등은 전대의 요새를 살리고 그 중 약 2km 사방에 걸쳐 바둑판 모양의 가구를 설치하고 다자이후 정청을 비롯한 관청 거리와 관인양성학교, 천황과 연고가 있는 사원, 영빈관 등을 갖춘 동아시아의 표준이 된 본격적인 도시였습니다.
‘서쪽의 수도’를 방문하는 외국 사절은 하카타만의 즈쿠시관(고로관)에서 관도를 남하하여 미즈키의 서문을 지나 추정하기를 라조문에서 스자쿠대로를 북상해서 객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외교 의례를 위해 위의를 갖추고 다자이후 정청으로 향했습니다. 정청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의례와 손님을 맞이하는 연회에서 일본·당·신라의 고급 식기를 사용해서 호화로운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서쪽의 수도’에는 문화인과 지식인도 많이 모였습니다. 당인과 함께 한시를 짓거나 다자이후 장관이었던 오토모노 다비토의 저택에서는 매화꽃을 즐기면서 일본시를 발표하는 ‘매화 연회’를 여는 등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오노성과 스이타온천‘(후쓰카이치온천)을 비롯한 지쿠시의 풍경에 마음을 담아 많은 노래가 읊어졌습니다.
많은 교류로 인해 대륙 유래의 선진 문화가 쌓이고 관세음사에서는 수도와 대륙 문화의 영향을 받은 조각상 외에 외국 사절을 연회에서 맞이하는 기악의 탈과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한시 ‘불출문’에서 읊은 범종이 현존합니다.
이렇듯 ‘서쪽의 수도’는 동아시아의 선진 문화와 일본 문화를 교차시키는 국제 교류도시였습니다. 그 유산은 지쿠시 땅에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을 돌아보시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에 꽃피운 국제 교류 도시 ‘서쪽의 수도’.
그 장대한 스토리를 전하는 문화재는 후쿠오카현 지쿠시노시·가스가시·오노조시·다자이후시·나카가와시·우미마치, 사가현 기야마초 7개 지역에 걸쳐져 있습니다.
7개 지역이 전하는 매력에 빠져 보시겠습니까?

‘서쪽의 수도’ 위치도

남쪽에 불어오는 문화, 교류의 활발함

스가와라노미치자네가 하늘에 무죄를 호소했다고 전해지는 덴파이산에서는 국가 제사와 도항 기원이 행해졌던 호만산과 부젠으로 빠지는 관도를 따라 아시키산성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요슈에서도 읊어졌던 산기슭에 있는 스이타온천(후쓰카이치온천)은 힐링과 교류의 장으로서 지금도 알려져 있으며 근방에는 스기즈카하이지와 도노하루탑 유적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남쪽에는 고도의 문화를 풍기는 공간이 펼쳐집니다.

지쿠시노시

  • 후쓰카이치온천 만요가비

  • 스기즈카하이지의 초석건물

  • 아시키산성 유적 제3수문

  • 아시키산성 유적 전경(북쪽에서)

  • 스이타온천(후쓰카이치온천)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교류의 길

약 2,000년 전 후쿠오카 평야 일대는 ‘나코쿠’라고 불리며 왕묘가 발견된 가스가구릉 주변은 해외 문물과 기술이 가득했습니다. 663년 하쿠스키노에 전투 후 구릉 골짜기에는 한반도의 토목 기술을 살린 크고 작은 미즈키가 건축되고 ‘서쪽의 수도’가 성립되자 관도를 외국 사절과 상인들이 왕래했습니다. 거리를 거닐면 교류와 역사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가스가시

  • 우토구치 가마 유적 출토 처마 기와

  • 외국 사절이 왕래한 관도(사키노하루 유적)

  • 계곡을 가로지르는 덴진산 미즈키 유적 토루

  • 간논산 산정에서 소미즈키를 바라보다

  • 오도이미즈키 나무통

옛 기술, 도시의 수호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미즈키. 고도의 토목 기술로 지어진 토루가 평야를 가로지르며 오노성과 함께 ‘서쪽의 수도’의 방벽이 되며 수도의 관인과 외국 사절단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우시쿠비 일대의 스에키 가마에서는 뛰어난 제도 기술로 ‘서쪽의 수도’ 식기를 생산했으며 젠이치다 고분군에는 전대의 대외 교류에 힘쓴 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에 서면 그런 고대 풍경이 보입니다.

오노조시

  • ‘와도6년(713년)’명 헤라가키 스에키

  • 우시쿠비 스에키 가마 유적

  • 대외 교류의 역사를 전하는 젠이치다 고분군

  • 외국 사절이 다녀간 미즈키 서문 유적

  • 미즈키 유적의 토루 단면

  • 미즈키 유적·오노성 유적 원경

옛 정치·외교·방위·문화의 도시

동아시아 교류 거점이었던 ‘서쪽의 수도’. 백제의 수도를 본떠서 성채를 방비하고 당나라의 수도를 본떠서 정청, 바둑판 가구, 영빈관을 정비했으며 뛰어나고 아름다운 문양의 기와로 장식했습니다. 외국 사절과 상인이 선진 문화·문물을 가져오고 오토모노 다비토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등의 지식인은 새로운 문화를 발신했습니다. 그 유산을 품은 고도는 국제 관광 도시로서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다자이후시

  • 헤이안 그림 두루마리가 펼쳐지는 다자이후텐만궁 신행 행사

  • 매화 연회의 복원 모형(야마무라 노부아키 작)

  • 고대의 분위기를 현대에 전하는 다자이후텐만궁

  • 고도의 음을 울리는 관세음사의 범종

지쿠시를 적시는 유구의 소수

나카가와에서 취수하여 대지의 자락을 완만하게 흐르는 인공 용수로인 사쿠타노우나데. 720년에 성립한 ‘일본서기’ 진구황후기에 등장하며 그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대지를 관통하는 개천의 총 길이는 약 5.5km이며 ‘서쪽의 수도’가 성립하자 풍부한 곡창 지대는 그 발전을 지속했습니다. 지금도 유유히 흐르는 수변 풍경은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나카가와시

  • 사쿠타노우나데의 전승과 관련된 사쿠타신사

  • 벼락에 의해 갈라진 전설의 바위

  • 대지를 관통하는 사쿠타노우나데

  • 옛 모습을 품은 사쿠타노우나데

수호의 중심, 기도산

만요슈에서도 읊어진 시오지산. 665년 하쿠스키노에 전투 후에 방위망의 요점으로 오노성이 지어지고 훗날 ‘서쪽의 수도’의 북방 수비를 담당했습니다. 나라시대, 진호 국가를 위해 시텐노지가 건립되고 호국 기도가 드려졌습니다. 헤이안시대, 사람들은 수많은 경총을 만들고 말법 시에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수호와 기도의 무대는 지금도 조용히 사람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미마치

  • 시오지산에서 발견된 경통

  • 길이 180m가 넘는 햣켄 돌담

  • 오노성 유적의 초석 건물군

  • 비샤몬당

  • 비샤몬 참배

남쪽의 수호와 ‘여행객’의 시선

665년 오노성과 함께 지어진 기이성은 이후에 ‘서쪽의 수도’ 의 남쪽 수호를 담당했습니다. 나라시대, 다자이후의 장관으로 부임 중에 부인을 잃은 오토모노 다비토는 조문하러 온 관인과 성에 올라 성에서 보이는 풍경에 애가를 읊었고 지쿠고 장관인 후지이노 무라지오나리는 귀경하는 오토모노 다비토를 산도의 쓸쓸함에 빗대어 시를 읊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서면 그러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마음을 흔듭니다.

기야마초

  • ‘성의 산도’ 가비

  • 기이성 유적의 대형 초석 건물군

  • 높이 솟아 있는 기이성 유적 남쪽 수문 석루

  • 산자락에 이어져 있는 기이성 유적의 토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