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

「니시노미야코(서쪽 도읍)」 성립 이전인 7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동란 속에서 방위 최전선이 되었던 치쿠시에는 산성과 토루 방위선으로 둘러싼 거대한 요새가 출현했습니다. "이니시에 요새"를 둘러보면 격동의 시대에서 풍부한 교류의 시대로 이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663년,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향했던 일본은 백촌강(白村江)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대패하고 외국으로부터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전투 이듬해, 웅대한 토루와 해자로 이루어진 미즈키(水城) 성을 쌓고 북서쪽으로 펼쳐진 평야를 차단하고, 이 성벽과 이어지는 요새로서 북쪽에 오노성(大野城), 남쪽에 기이성(基肄城)을 쌓아, 곳곳에 쌓은 토루와 자연 요새로 주위의 수비를 다졌습니다. 바다로부터 상륙하는 적에 대비해 사방에 방어선을 만들어 요새화를 꾀한 것입니다.
이는 백제의 왕도 부여를 본뜬 것으로 백제 관인의 지도하에 최첨단 토목 기술을 접목하여 거대한 방어 시설을 단기간에 축조하였습니다. 이후 외국으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지자 이 성벽을 외곽으로 활용한 「니시노미야코 (서쪽 도읍)」 다자이후가 성립됩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가 재개되자 미즈키(水城) 성의 서문은 하카타만에서 들어오는 외교 사절을 맞이하는 다자이후의 현관이 되었습니다.